전기요금 인상, 에너지시장의 모순을 해결해야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올 겨울 ‘에너지 위기’, ‘블랙아웃’이라는 단어는 전문가들뿐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도 익숙해졌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저렴하고도 안정적인 에너지 인프라를 가장 짧은 시간에 완성하였지만, 2011년 9·15 정전사태 이후 대국민 정전 대비훈련을 실시할 정도로 심각한 전력위기에 직면해있다.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게 된 이유를 살펴보면, 2007년 이후 전기요금이 화석연료 가격보다 저렴해 지면서 전기를 쓰지 않아도 될 용도(예: 보일러, 전기로 등)에 석유, 가스, 석탄 등 화석연료 대신 전기를 사용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면서 전기 사용량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전기화(electrification)” 현상이다. 최종에너지에서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의 10.8%에서 2011년에는 19.6%로 20여년만에 약 2배 수준으로 증가하였다.

 

석유, 가스, 석탄과 같은 1차 에너지에 비해 2차 에너지인 전기는 동일 열량 대비 더 비싼 것이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발전 및 송배전 과정에서 버려지는 부분이 있을 뿐만 아니라 발전과정에서 많은 사적비용 및 외부비용이 발생하는 등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2차 에너지의 가격이 1차 에너지보다 싼 가격 역전이 발생한 것이다. 생라면 한 봉지의 가격보다 끓인 라면 한 그릇의 가격이 더 싼 모순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에너지 부족국가임에도 불구하고 1인당 세계 최고수준의 전력소비량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과 철저한 수요관리가 당면한 최우선 과제일 수밖에 없다. 정부와 한전 역시 합리적인 전기 사용을 유도하기 위해 지난 1월 중순 전기요금 평균 4.0% 인상을 골자로 하는 전기요금 인상안을 의결했다. 또한 국제 연료가격 등 물가 변동을 반영해 전기요금 수준을 현실화하는 '연료비 연동제'가 조만간 확정될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도 포함되어 곧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011년 8월 이후 1년 5개월 동안 4차례의 전기요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전기수요의 급속한 확대를 제어하지 못했다. 이번 전기요금 인상 역시 자칫 국민들의 부담이 한전의 재무구조 개선에만 도움을 주고 ‘급속한 전기화’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결국 에너지시장 왜곡의 근본 원인인 1차 에너지와 2차 에너지 간 가격 역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전기요금 인상은 국민들의 부담만 가중시킬 수 있다.

 

새 정부의 에너지 당국은 향후 발전용량을 증대시키더라도 해결하지 못하는 전력망의 문제나 수요관리를 위해 중장기적으로 1차 에너지 및 2차 에너지 가격의 통합적인 조정을 검토해야 한다. 세수중립 및 물가안정의 원칙하에 기존의 분산되고 불합리한 에너지 가격체계를 통합적으로 관리하여 에너지믹스에 따른 유연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과도하게 억제되어 있던 전기요금을 정상화하고, 소비자들이 가장 효율적인 에너지원을 활용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예를 들어 통합된 에너지 세제에서 이산화탄소 등 환경오염물질이 가장 많이 배출되는 유연탄에 탄소세를 부과하거나, 원자력 사고발생시 환경피해에 대한 배상과 복구비용을 포함한 원자력손해배상세 등을 신설하여 세수를 늘려야 한다. 인상된 세수만큼 소비자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석유제품에 대한 유류세 등을 낮춰 세수중립과 물가안정을 동시에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2013년 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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