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한 에너지세제 개편 방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학과 유승훈 교수

2012년 12월 19일

 

석유, 석탄, 천연가스와 같은 1차 에너지에 비해 2차 에너지인 전기는 동일 열량 대비 더 비싼 것이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발전 및 송배전 과정에서 버려지는 부분이 많을 뿐만 아니라 발전과정에서 많은 사적비용 및 외부비용이 발생하는 등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1차 에너지인 석유, 석탄, 천연가스의 동일 열량 대비 전기가 더 싸다. 전기 소비자들은 전기가 기존 석유나 도시가스보다 요금도 더 싸고 매우 편리하기 때문에 전기로 에너지원을 교체해 왔다. 예를 들어, 최종에너지에서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의 10.8%에서 2011년에는 19.6%로 20여년만에 약 2배 수준으로 증가하였다. 물론 이러한 전기화(electrification)는 전기가 가지는 편리성의 장점 때문에 소득수준의 증가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임에 틀림없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전기화의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

 

전기화에 따라 발전소 건설도 순조롭게 진행되어 전기를 원만하게 공급하면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만 전기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보니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지난 9.15 대규모 순환정전 사태가 발생하였다. 더 나아가 이번 겨울도 Black-out의 공포 속에 긴장하고 지내야 할 판이다.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게 된 이유를 살펴보면, 2007년 이후 전기요금이 화석연료 가격보다 저렴해 지면서 전기를 쓰지 않아도 될 용도(예: 보일러, 전기로 등)에 화석연료 대신 전기를 사용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면서 전기 사용량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생라면 한 봉지의 가격보다 끓인 라면 한 그릇의 가격이 더 싼 상황이 생겨버린 것이다. 낮은 전기요금으로 인한 급속한 전기화로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전력사용량은 2009년 기준 OECD 평균의 1.7배 수준이며, 2010년 기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은 세계 제1위이다. 하지만 2000년 및 2005년에는 세계 1위가 아니었다.

 

낮은 전기요금은 에너지과소비를 부추기고, 에너지절약 유인을 저해하며, 신재생에너지 보급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를 전량 수입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에너지 과소비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달성하는데 가장 심각한 장애요인이다. 이미 에너지원간 상대가격이 왜곡된 상황에서 과거에 비해 높은 유류제품 가격은 전력과소비 구조를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전기요금 조정시기가 늦어질 경우 전력과소비 현상의 고착화와 에너지 다소비 형태의 산업구조 전환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므로, 장기적이고 거시적 관점에서의 국익과 소비자 편익제고를 위해 전기요금의 조정이 필요하다. 또한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15년이 되어야 기저설비의 부족이 해소될 전망이므로, 당분간 가격조정의 수요관리를 통한 피크수요 조절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예를 들어, 아직 환경세가 도입되고 있지 않은 발전연료에 대한 환경세의 도입을 고려해볼 수 있다. 즉 발전용 유연탄은 다른 연료에 비해 가장 열악한 환경성에도 불구하고 상대적 과세 수준은 가장 낮으므로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과세를 고려할 수 있다. 이는 대기오염 등 사회적 비용 반영 차원의 공평한 과세 원칙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현재 발생하고 있는 발전원간 불공정경쟁을 해소하면서도 전력과 타에너지간의 공정경쟁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많은 OECD국가들이 온실가스 배출감소를 목표로 국내탄에 대한 지원 중단과 더불어 수입석탄에 대한 과세 확대 정책을 병행하고 있는 바, 이러한 석탄에 대한 과세 동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만 세수 증가를 통해 국민들의 부담만 일방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증가한 세금수입만큼 다른 세금을 경감하여 세수 중립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이때 어느 세금을 경감하는 것이 바람직한가가 중요한 문제로 제기된다. 예를 들어, 소득세 경감, 부가가치세 경감, 법인세 경감, 유류세 경감 등을 들 수 있다. 발전용 유연탄에 대한 과세를 통해 전기요금의 인상을 가져왔다면 결국 전기와 경쟁이 되는 타 에너지원에 대한 세금을 경감하는 것이 최적의 에너지 믹스 달성을 위한 에너지원간 상대가격 체계의 마련이란 관점에서 그리고 에너지에 대한 국민들의 지출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시킨다는 측면에서 보다 바람직할 것이다. 

 

이때 우리는 유류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휘발유의 경우 대략 소비자 가격에서 절반 정도가 세금(유류세+부가가치세)이다. 경유의 경우에도 소비자 가격의 약 40% 정도가 세금이다. 즉 소비자 가격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제법 높은 편이다. 물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OECD 국가들도 휘발유와 경유에 대해 높은 세금을 매긴다. 따라서 구매력지수로 조정한 휘발유 가격 및 경유 가격을 국제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2012년 2분기 소비자 가격을 기준으로 볼 때, 31개 OECD 회원국 중에서 우리나라의 경유 가격은 8위, 휘발유 가격은 9위로 상위권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조건의 비산유국 및 경쟁국인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보다 높은 수준이라 국민들의 부담 및 산업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문제가 있는 상황이다. 

 

특히 금액 기준으로 볼 때 휘발유, 경유, 등유 수요의 약 2/3가 산업용 중간재임을 감안하면, 높은 유류제품 가격은 결국 대외 산업경쟁력의 약화로 귀결될 것이다. 따라서 발전용 유연탄 과세 등을 통한 전기요금의 인상으로 확보된 추가적 세수에 대해 유류세를 인하하여 세수중립을 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물론 유류세가 인하되면 석유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이는 원유 수입 증가를 유발하여 무역수지를 악화시킨다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석유제품에 대한 수요는 가격에 대해 비탄력적이므로 유류세 인하를 통해 소비자 가격이 인하되더라도 수요 자체가 크게 늘어나지는 않으며, 수요가 늘어난다 하더라도 석유제품에 대한 소비증가는 경제성장을 유발한다는 국내외 연구결과가 많음을 감안할 때, 수입이 늘어나더라도 GDP의 증가가 이를 상쇄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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